2007년 09월 19일
역사이야기 (1)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데... 흠... 역사 이야기는 다들 좋아하실려나.
오늘은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 가 아니라 오다의 오른팔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 일본 전국시대에 가히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기행을 일삼고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많이 했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재능을 감추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능력을 시기하는 형제들과 친척들한테 죽음을 당할테니까 말이다. 오다의 재능은 사람을 부리는 데에서도 드러났는데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옆동네에 위치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굳건한 동맹을 맺었던 점 (이 당시에는 옆동네는 동맹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 있었으니까), 지휘고하를 묻지 않는 능력 위주의 인사 (사농공상의 계급은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정비되지만 사무라이 계급만이 영주가 되는건 이때에도 유효했다) 이 두 가지였다. 특히 능력위주의 인사는 한낱 농부의 자식이었던 기노시다 도오키치로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용했던 점을 보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케치 미쓰히데 또한 그러한 능력 위주의 인사였다. 아케치는 오다가의 가신이 아니었다. 배반/배신이 난무했던 당시 오랫동안 자신의 가문을 섬겨오지 않았던 신하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은 매우 드문일이었다. 오다는 그 아케치에게 시코쿠에 있는 조소카베 가문을 멸하라는 명령을 했는데, 그 명이 참 음미할만 하다.
"내가 너에게 시코쿠를 주겠다"
결국은 이전의 영지는 몰수할테니 가서 죽기살기로 싸워서 지금의 영지보다 큰 시코쿠를 잡아삼키란 얘기다. 그러나 싸움에는 능하지만 오다의 흉중을 읽는데는 빠르지 못했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만약 시코쿠를 치지 못한다면? 난 어디로 가지?'
그 유명한 '혼노사의 변 (오다는 아케치의 배반에 의해 혼노사에서 목숨을 잃었다)', '삼일천하 (아케치는 혼노사의 변을 전해들은 하시바 히데요시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에게 삼일만에 죽임을 당한다)' 라는 사실은 이러한 사소한 커뮤니케이션 미스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아케치 미쓰히데가 내가 천하를 잡겠다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하에 실행된 것이 아니라, 자기 한 목숨, 영지를 보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일이다. 물론 천하의 오다에게 인정을 받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다를 급습하는데에는 작은 실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케치는 전술가이지 전략가가 아니었다.
쿠데타, 반정, 혁명 등등 기존의 권력을 전복시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어떤 형태의 것들을 보더라도 성공했을 경우의 실행계획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의 장악(방송, 신문사 등), 상징적 건물에 대한 점거(최고권력자의 거처, 의사당, 왕궁 등), 이전 세력에 대한 부정 (부정축재, 권력남용, 무능력 등 폭로), 정당성 확보 (옥새획득, 체육관 선거, 건국신화 등) 와 같은 작업들이 그러한 일들이다. 하지만 아케치는 위와 같은 행동 중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오다를 쳐야만 했던 대의명분도 만들지 못했고,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었던 교토(교토에는 일본천왕이 있다)로도 진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굳건한 동맹군을 만들지도 못했다. 결국 며칠을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하고 허비하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을 치고 오다를 계승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건 오다의 잘못일까 아케치의 잘못일까? 글쎄...
오늘은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 가 아니라 오다의 오른팔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 일본 전국시대에 가히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기행을 일삼고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많이 했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재능을 감추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능력을 시기하는 형제들과 친척들한테 죽음을 당할테니까 말이다. 오다의 재능은 사람을 부리는 데에서도 드러났는데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옆동네에 위치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굳건한 동맹을 맺었던 점 (이 당시에는 옆동네는 동맹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 있었으니까), 지휘고하를 묻지 않는 능력 위주의 인사 (사농공상의 계급은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정비되지만 사무라이 계급만이 영주가 되는건 이때에도 유효했다) 이 두 가지였다. 특히 능력위주의 인사는 한낱 농부의 자식이었던 기노시다 도오키치로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용했던 점을 보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케치 미쓰히데 또한 그러한 능력 위주의 인사였다. 아케치는 오다가의 가신이 아니었다. 배반/배신이 난무했던 당시 오랫동안 자신의 가문을 섬겨오지 않았던 신하에게 중책을 맡기는 것은 매우 드문일이었다. 오다는 그 아케치에게 시코쿠에 있는 조소카베 가문을 멸하라는 명령을 했는데, 그 명이 참 음미할만 하다.
"내가 너에게 시코쿠를 주겠다"
결국은 이전의 영지는 몰수할테니 가서 죽기살기로 싸워서 지금의 영지보다 큰 시코쿠를 잡아삼키란 얘기다. 그러나 싸움에는 능하지만 오다의 흉중을 읽는데는 빠르지 못했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만약 시코쿠를 치지 못한다면? 난 어디로 가지?'
그 유명한 '혼노사의 변 (오다는 아케치의 배반에 의해 혼노사에서 목숨을 잃었다)', '삼일천하 (아케치는 혼노사의 변을 전해들은 하시바 히데요시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에게 삼일만에 죽임을 당한다)' 라는 사실은 이러한 사소한 커뮤니케이션 미스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아케치 미쓰히데가 내가 천하를 잡겠다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하에 실행된 것이 아니라, 자기 한 목숨, 영지를 보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일이다. 물론 천하의 오다에게 인정을 받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다를 급습하는데에는 작은 실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케치는 전술가이지 전략가가 아니었다.
쿠데타, 반정, 혁명 등등 기존의 권력을 전복시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어떤 형태의 것들을 보더라도 성공했을 경우의 실행계획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의 장악(방송, 신문사 등), 상징적 건물에 대한 점거(최고권력자의 거처, 의사당, 왕궁 등), 이전 세력에 대한 부정 (부정축재, 권력남용, 무능력 등 폭로), 정당성 확보 (옥새획득, 체육관 선거, 건국신화 등) 와 같은 작업들이 그러한 일들이다. 하지만 아케치는 위와 같은 행동 중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오다를 쳐야만 했던 대의명분도 만들지 못했고,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었던 교토(교토에는 일본천왕이 있다)로도 진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굳건한 동맹군을 만들지도 못했다. 결국 며칠을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하고 허비하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을 치고 오다를 계승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건 오다의 잘못일까 아케치의 잘못일까? 글쎄...
# by | 2007/09/19 18:09 | Work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